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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강산무진 - 김훈

 

 

작가 김훈의 단편 소설집 '강산무진'. 책은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배웅'을 시작으로 이 책의 제목인 '강산무진'까지 실려있다.

 김훈은 섬세한 관찰력과 짧은 문장 그리고 현대인의 이상과 갈등을 잘 녹여낸다고 생각한다. 이런 그의 특징은 강산무진에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화장'은 죽은 아내 그리고 직장에서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은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둘 사이에서 주인공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로 대표되는 죽음과 추은주로 이름지어진 현실의 삶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은 추은주를 향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거나 아내의 죽음을 하찮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장례를 준비하고, 화장품 마케팅과 같은 일을 해낸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끼인 주인공. 그가 겪는 전립선염은 현대인들이 겪는 답답함과 같다. 안에서의 꽉참이 밖으로의 분출로 이어지지지 못하는 단절감이다. 우리가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표 단편작으로 꼽히는 '언니의 폐경'도 눈에 띤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폐경은 곧 여성과 큰 관련있는 일이다. 즉 이 단편은 여성의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흔히 '마초'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책을 읽기 전, 이런 간극이 어떻게 메워질지 궁금했다.

 작가는 여성들이 겪는 '폐경'을 통해 인간의 상실감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언니가 폐경을 겪는 모습을 지켜본다. 옆의 여성의 기능을 상실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목격하는 셈이다. 반면 자신은 남편과 이혼중이다. '여성성'이라는 것을 두고 한쪽에서는 물리적인 상실이, 반대에서는 심리적인 상실이 일어난다. 이런 상실감은 굳이 '여성'이라는 범주에 포함하지 않아도 될만큼 모두의 공감을 얻는다.

 

 '강산무진'은 주인공이 간암 판정을 받는 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침착하게 자신의 신변을 정리해 나간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의사에게 왜 자신이 간암인지 묻지 않는다. 단지 의사의 조언을 따른다. 의사는 가족에게만 병을 알리고 회사에는 일절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에서는 주인공의 병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의사는 또한 약간의 산책과 운동을 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그의 말을 따른다. 어느날 산책길에서 박물관을 지나치게 된다. 박물관 건물에 걸린 현수막이 '가야토기 특별전'에서 '조선후기 회화 특별전'으로 바뀐 것을 본다. 한기를 피해 들어간 박물관에서 주인공은 조선후기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라는 산수화와 마주친다.

 

 강산무진도를 본 주인공. 화폭 속에서 '눈으로 본 강산과 꿈에 본 강산, 꿈에도 보지 못한 강산들이 포개지고 잇닿으면서 출렁거렸다'고 느낀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주인공은 침착하게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산무진도를 앞에 둔 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에 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