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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세계사의 구조 -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서 찾은 게 '세계사의 구조'다. 내용은 물론 어떤 구성인지도 몰랐다. 오직 가라타니 고진이 쓴 것이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은 꼭 메모해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두 중요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기보다는 내게, 혹은 이글은 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구절이나 가라타니 고진의 다른 철학자들의 인용글들을 적어 넣으려고 한다.

 

 

 

 현재의 선진자본주의국가에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이다. 먼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방치되면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계급대립으로 귀결된다. 그에 대해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자본제경제가 초래하는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 과제를 해결한다. 자본도 네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기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접합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느 하나를 결여해도 성립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다.

 

 그 이전부터 사적 유물론에 대해 비판이나 의심은 자본제 이전 사회를 다루는 학문에서 나왔다.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치적 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의 견해는 근대자본주의사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자본제 이전 사회에 적용하면 이상해진다. 예를 들어, 원시사회에는 원래 국가가 없고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구별도 없다. 이런 사회는 마르셀 모스가 지적한 것처럼 호수교환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교환이라면, 상품교환이 바로연상된다. 상품교환의 양식이 지배적인 자본주의사회에 있는 한,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타입의 교환이 존재한다. 첫째는 증여-답례라는 호수이다.

 이어서 교환양식B 또한 공동체 사이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침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약탈은 그 자체가 적으로 약탈하려면, 지배공동체는 단순히 약탈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지배공동체는 복종하는 피지배공동체를 다른 침략자로부터 보호하고 관개 등의 공공사업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원이다. 막스 베버는 국가의 본질은 폭력독점에 있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국가가 폭력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국가 이외의 폭력을 금지함으로써 복종하는 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 즉 국가가 성립하는 것은 피지배자가 복종을 통해 안전과 안녕을 부여받는 일종의 교환을 의미할 때이다.

다음으로 제3의 교환양식C, 즉 상품교환은 상호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A나 B, 즉 증여를 통해 구속하거나 폭력을 통해 강탈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즉 상품교환은 서로가 타인을 자유로운 존재로서 승인할 때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품교환이 발달할 때, 그것은 각 개인을 증여원리에 근거하는 일차적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된다.

 이들에 더하여 여기서 교환양식D에 대해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교환양식B가 초래하는 국가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교환양식C에서 생기는 계급분열을 넘어서, 말하자면 교환양식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동시에 상호적인 교환양식이다. 이것은 앞의 세 가지처럼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셀 모스는 자기파멸적 증여인 포틀래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광거어린 증여나 소비의 동기, 또는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부의 상실이나 파괴는 특히 포틀래치집단에서 이해관계가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추장과 부하의 사이, 부하와 그 추종자들 사이에는 선물에 의해 신분계층제가 만들어진다. 준다는 것은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기가 보다 위대하고 보다 높이 있으며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받고 답례를 하지 않는다거나 더 많은 답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속되는 것이고, 가신이나 하인이 되는 것이며, 작아지는 것이고,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교환된 것 속에는... 증여를 유통시키고 받아들이게 하고 답례하게 하는 어떤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로부터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만이 아니라, 동시에 토지로부터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이기도 하고, 일정기간 토지의 풍요도를 높이는 모든 진보는 동시에 이 풍요도의 영속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합중국처럼 일국이 그 발전의 배경으로서 대공업에서 출발한다면, 그런만큼 이 파괴과정도 급속히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동시에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망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기술과 결합을 발전시킨다'    -마르크스-

 

 

사회구성체 

지배적 교환양식 

세계시스템 

 1. 씨족적

호수제 A 

 미니시스템

 2. 아시아적

약탈 - 재분배 B1

 세계 = 제국

 3. 고전고대적

약탈 - 재분배 B2

 

 4. 봉건적

약탈 - 재분배 B3

 

 5. 자본주의적

상품교환C

 세계 = 경제

 

 

 

 인류학자 알랭 테스타는 유동수렵채집민과 정주수렵채집민을 구별했다. 그는 전자에서는 수렵채집물이 평등하게 분배되지만, 후자에서는 불평등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정주와 함께 생산물의 '비축'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인간불평등의 기원'을 발견했다.

 

 

 프로이트는 미개사회 시스템을 '억압된 것의 회귀'로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번 억압되고 망각된 것이 회귀할 때, 그것은 단순한 상기가 아니라 강박적인 것이 된다. 씨족사회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회귀하는 것은 살해당한 원부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되돌아오는 것은 정주에 이해 잃어버린 유동성(자유)-평동성은 유동성에 수반된다-이다. 그것은 왜 호수성의 원리가 강박적으로 기능하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이란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규제에 따라 노동하는 디스플린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종교가 중요하다. 베버는 <프로텐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노동윤리(에토스)를 종교개혁과 결부시켰지만, 실은 고대문명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살린스가 말하는 것처럼 수렵채집사회의 사람들은 단시간밖에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토목공사나 농업노동에 종사시키는 것은 단순한 강제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자발적인 근면함이 필요했다. 노동윤리의 변화 또한 종교적인 형태를 취했다고 해도 좋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하는 '계약'을 개인과 개인이 아닌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본다면, 국가의 기원을 상각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계약의 성질이다. 홉스가 말하는 계약이란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이다. 통상 공포에 의해 강요된 합의는 계약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홉스는 그것 또한 계약이라고 말한다.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은 유효하다" "완전한 자연상태 하에서 공포에 의해 맺어진 계약은 구속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자신의 생명 대신에 몸값이나 노동을 지불한다는 계약을 적과 맺으면, 나는 그것에 구속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쪽은 생명을 얻고, 다른 쪽은 돈이나 노동을 얻는다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홉스는 국가(주권자)의 성립을 '사회계약'에서 볼 때,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을 둘로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