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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리뷰

일본 정신의 기원 -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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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따르면 국가의 최고 관리는 설령 의회가 없어도 최선의 것을 행한다. 그러나 의회의 사명은 시민사회의 합의를 얻어냄과 동시에 시민사회를 정치적으로 도야하고 국정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과 존경심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헤겔 자신이 의회를 경시했다거나 프로이센의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의회제 민주주의 '발달'이란 바로 이런 도야가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 '인민'이 형성된다. 일본을 예로 들어 말하면, 메이지의 제국 의회에 의한 '도야'를 통해서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나왔다. 그러나 보통선거를 실현했다고 해서 헤겔이 지적한 사항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관료가 정한 것을 사람들이 자기가 정한 것처럼 믿도록 '도야' 되었을 뿐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정은 결정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의회란 실질적으로 관료가 입안한 것을 국민이 스스로 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기 위한 치밀한 절차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관료를 공격하는 정치가는 인기를 얻는다. 마치 이 정치가들이 국민의 의사를 실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관료와 싸우는 정치가'는 은밀하게 관료들 중에서 다른 그룹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