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옆집 오빠, 누나, 친구에게 눈길이 간 적이 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상대에게 한 발짝만 다가가면 사랑이 이뤄질 것만 같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운명 같은 느낌. 잠들기 전 눈앞에 어른 거리는 옆집 첫사랑. 그렇게 나와 아주 밀집한 공간에서 '첫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절친에게 '옆집에 사는 그 애'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던 그 사람은 어느덧 마음속 방 한 칸을 차지하고야 만다.
그룹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의 이름을 직역하면 '옆집 소년'이다. 따뜻한 봄기운이 서서히 초여름 열기로 변하던 지난 5월 여섯 소년은 데뷔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데뷔 전부터 지코가 직접 프로듀싱한 신인 그룹으로 먼저 알려졌다. 자유분방하고, 힙합 기반으로 음악을 해왔던 블락비를 이끈 지코가 키운 신인 그룹이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일찍이 가요계에서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대부분 블락비를 떠올렸겠지만, 보이넥스트도어는 여름 초입의 맑은 하늘 같은 옆집 소년들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지코가 설립한 KOZ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는 첫 그룹이다. 지난 2020년 11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레이블로 편입돼 현재는 하이브 소속이다. 히트곡 메이커이자 힙합 프로듀서, 래퍼로 활동 중인 지코와 대규모 자본을 장착한 하이브가 만나 탄생한 그룹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데뷔하게 됐다. '하이브 막내'라는 수식어 또한 보이넥스트도어에 거는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최근 데뷔한 그룹 중 드물게 전원 한국인 멤버로 결성됐다. 성호, 리우, 명재현, 태산, 이한, 운학 등 6인조로 이뤄졌다. 데뷔까지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보이넥스트도어가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선배 그룹들은 음악에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입히는 데 열중했던 시기였다. 반면 보이넥스트도어는 특정한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지 리스닝'을 추구했다. 단지 '옆집 소년'이라는 그룹명과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선보였다.
데뷔 앨범 'WHO!'에서 보이넥스트도어가 지향하는 음악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돌아버리겠다' 'One and Only' 'Serenade'로 이어지는 데뷔 타이블곡 3연작은 문뜩 찾아온 사랑에 낯선 설렘과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하면서 거듭되는 고민 끝에 고백을 결심하게 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이전 세대들의 남자 그룹들이 시도했던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답습하지 않고,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첫사랑'을 심각하게 풀어가진 않았다. 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감정을 되도록 솔직하게 담아내려고 했다. 마음에 싹트는 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털어놓는 가사와 '이지리스닝'이라는 음악적인 방향성이 각 트랙에 버무려 졌다. 처음 사랑에 빠져 상대의 행동 하나에 신경 쓰이는 '돌아버리겠다'를 시작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감을 충전하는 'One and Only', 주체할 수 없는 떨림에 소리쳐 고백하는 'Serenade'까지. 보이넥스트도어는 내 마음속 작은 변화로 출발하는 첫사랑의 감정으로 팬들의 마음을 노크했다.
'돌아버리겠다'는 '야 내가 미친 건지 함 들어봐 / 손이 슬쩍 닿은 듯한데 / 날 보고 씩 웃네 / 뭐 이리 예뻐 / 미쳤나봐'라고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로 시작됐다. 그러면서 관심 있는 상대 주변에 있는 이성들 때문에 '돌아버리겠다'고 속앓이를 했다. 대화 하는 듯한 가사는 가볍고 밝은 음악 스타일을 타고 귀에 꽂혔다. 그동안 K팝 그룹들의 치트키였던 '강렬한 베이스'를 제외하고, 경쾌한 밴드 구성으로 노래를 이끌어갔다. 후렴구에서 드럼 심벌로 포인트를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보이넥스트도어는 상대에게 자신을 어필했다. '어느 옷을 고를까나 / 블랙은 so simple 깔 맞춤은 조금 튀어 / 향수 칙하고 이 한번 확인'하며 단장을 한 뒤 '날 가만 내버려두지 마 / I'll be your ideal type / 딴 데 가기 전에 넘어와'라고 'One and Only'에서 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Listen, I'm the one and only'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첫사랑에게 다가갔다. '내가 네가 원하던 그 유일한 사람이니 놓치지 말라'는 엄포도 더해졌다. 'One and Only'는 데뷔 앨범 수록곡 중에 가장 지코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노래다. 전형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화법으로 곡을 만들어왔던 지코의 음악이 10대 청춘 버전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결국 '옆집 소년'들에게 남은 건 고백이었다. '아 진짜 긴장돼 죽겠네 / 굳어버린 입술 풀어 / 이러다간 말짱 꽝이야'라고 멈칫하던 순간도 잠시 'I love you baby baby baby / 외쳐대느라 내 진심을 동네방네 다 알아 / 이웃들 야야야 / 제발 좀 잠 좀 자자 ㅠㅜ'라며 동네가 떠나갈 듯이 외쳤다. 친구가 되기 싫고 이제는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청춘이 외침이었다.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고민하고 고백하기까지 보이넥스트도어는 상대에게 '직진' 뿐이었다. '자유롭고 솔직한 감수성이 있는 팀'이라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컬러가 완성되는 지점이었다. 노래 전반에 흐르는 무겁지 않은 비트를 타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가슴 속 진심을 꺼내놓았다.
이후 발매된 첫 미니앨범 'WHY..'에서는 보이넥스트도어의 다음 이야기가 펼쳐졌다. 청춘의 사랑을 외치던 보이넥스트도어는 서툰 첫사랑을 끝내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Crying'를 시작으로 헤어진 후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뭣 같아', 그래도 다시 긍정적인 미래를 그려보는 'ABCDLOVE'. 첫사랑이 이뤄졌지만, 결국엔 다시 혼자가 돼버린 상황을 친구에게 고백하듯이 말했다. 이 가운데 '입이 거친 게 싫다던 너 때문에 / 화가 나도 욕을 못하고 / 너 기대라고 넓혀놓은 내 어깨는 이젠 / 지하철 속 장애물 뿐이야'라고 '뭣 같다'에서 쏟아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이별의 순간에도 감정을 표현하는데 쓸데없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말하는 듯한 보이넥스트도어의 가사들은 듣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도왔다. 처음 들었을 때 다른 K팝 그룹들의 음악보다 귀에 꽂히지 않을 수 있어도 계속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트랙들이다. 명재현, 태산, 운학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는 점은 향후 보이넥스트도어가 음악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걸 보여줬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이전 세대 남자 아이돌 그룹과 확연히 다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관 대신에 '옆집 소년'들이 세레나데와 이별을 통해 청춘만이 지닌 청량함을 들려줬다. '군더더기 없는 음악이 가장 좋다'와 '다시 돌고 돌아 청량함으로 회귀'라는 올해 데뷔한 남자 그룹의 특징 또한 보이넥스트도어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 지코의 프로듀싱이 더해진 음악성은 보이넥스트도어를 차세대 K팝 남자 그룹을 이끌 팀 중에 하나로 꼽기에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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